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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상자’에 넣지 않는 법,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 신간 출간 (다이앤 에런사프트, 미셸 유르키에비치 지음, 조은영 옮김, 수오서재)

화장실, 스포츠, 학교, 병원까지 오늘의 젠더 논쟁을 아이의 삶에서 다시 읽다

최준혁2026년 2월 24일 오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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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jpg출판사 제공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는 순간, 어른들은 안도한다. 익숙한 규칙 위에 아이를 올려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안도를 조용히 흔든다. 젠더는 더 이상 두 칸의 상자에 나뉘지 않으며, 아이들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살아내는 세대라고 말한다.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은 젠더의 기초 개념부터 일상에서 폭발하는 갈등 지점까지를 한 권에 묶어, 양육자와 교육 현장에 필요한 언어를 건넨다.

책은 먼저 왜 젠더가 지금,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는지 짚는다. 과거에는 딸과 아들의 역할이 미리 정해졌고, 그 규칙에서 벗어난 아이는 ‘문제’로 취급되곤 했다. 저자들은 상담실과 연구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를 바탕으로, 고정된 규범이 아이의 가능성을 얼마나 좁혔는지 설명한다. 여학생은 “의사보다 엄마가 될 테니까”라는 말을 내면화했고, 남학생은 강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부드러움을 숨겼다. 범주가 확장되자 반대로 숨통이 트였다. 감정을 말할 공간이 생기고, 자기주장을 비난 없이 연습할 환경이 조금씩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사회적 논쟁의 핵심을 ‘누가 위험한가’라는 질문으로 바꾼다. 트랜스젠더 학생이 화장실에서 타인을 위협한다는 상상은 반복되지만, 실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짚는다. 대신 “트랜스젠더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남는다. 논쟁의 언어가 아이를 보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아이를 표적으로 삼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의료 영역을 다루는 방식은 특히 절제되어 있다. 사춘기 이전 아동에게는 의학적 개입이 없으며, 지원은 상담과 교육, 그리고 학교와 지역 사회의 안전망으로 이뤄진다고 정리한다. 동시에 사춘기억제제와 호르몬 치료를 둘러싼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이 논의가 공포나 소문이 아니라 근거와 절차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숫자와 사례는 결론을 강요하기보다, 과장된 선동이 아이와 가족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부모와 양육자를 향한 조언은 단순한 응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거야 그냥 아는 거죠”라고 말하는 아이의 확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허용’과 ‘규정’의 차이를 구분해 안내한다. 남자아이가 바비를 갖고 놀아도 된다는 말로는 달래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원하는 건 장난감의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받는 감각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젠더 중립이라는 말이 때로는 ‘지워버리기’로 오해될 수 있다고 짚으며, 목표는 젠더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억압하는 규범을 걷어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들』은 어느 한쪽의 구호로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자라는 자리에서 필요한 질문과 정보를 차분히 쌓아 올린다. 논쟁이 커질수록 가장 작고 약한 존재가 먼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단단한 문장으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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