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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가 상처를 꿰매는 방식, 『어떤 고요』 (황정순, 상상인)
상실을 과장하지 않고, 낮은 일상으로 그리움을 오래 견디는 시집
출판사 제공
소리가 멎으면, 감정도 멎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어떤 고요』에서 고요는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격렬한 파동 이후 남은 침전물”이다. 상실이 남긴 자리를 감정으로 터뜨리지 않고, 천천히 봉합해 나가는 생활의 기술에 가깝다. 시집의 정서는 분명 슬픔에서 출발하지만, 그 슬픔은 과거에 붙박인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힘으로 움직인다.
황정순은 오래된 사물과 장소, 밥상을 차리는 낮은 행위 속에 그리움을 내려놓는다. 상실의 통증과 멀찍이 떨어져 서지 않고, “나란히 앉아 시간을 견디며” 그리움을 일상의 의례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거창한 위로 대신 ‘살아 있는 하루’의 촉감이 남는다. 닳아 해진 자리도 다시 꿰맬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꿰매는 손놀림 자체가 삶이라는 감각이다.
시편들은 이동의 이미지로 삶의 지층을 비춘다. 태백과 폐광촌의 풍경, 역과 플랫폼, 길 위의 장면들이 반복되며 떠남과 도착이 어긋나는 시간을 드러낸다. 열차가 멈칫하고, 기척이 사라지고, 빈집이 젖어드는 순간들 속에서 시는 서둘러 결론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슬픔을 품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형식을 찾아간다.
이 시집의 목소리는 높지 않다. 설득하려 들지 않고 오래 남는다. “낮추고 오래 간절하게”라는 태도가 시 전체를 밀어 올린다. 그 간절함은 울부짖음이 아니라 듣기의 깊이로 나타난다. 상처 난 자리를 덮어버리는 평정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고요가 무엇인지 끝까지 묻는다.
『어떤 고요』는 상실을 잊게 해주지 않는다. 대신 상실을 견디기 위해 잠시 머무를 ‘집’을 마련한다. 그 집 안에서 그리움은 계속 움직이고, 시는 그 움직임을 정직하게 기록한다. 고요는 도착점이 아니라,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자세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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