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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무너질수록 본질로 돌아간다”, 『재미의 조건』 (류승완, 은행나무)

30년 현장을 버텨온 감독 류승완이 말하는 영화의 본질과 생존의 감각

장세환2026년 2월 3일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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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조건.jpg출판사 제공

영화는 어디에서 재미를 얻고,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재미의 조건』은 한국 영화의 최전선에서 30년 넘게 작업해온 감독 류승완이 던지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성공담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창작자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묻는 기록이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소비재가 아니라 감각과 경험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는 관객이 극장에서 불이 꺼지고 다시 켜지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감정으로 자리를 떠나는 경험을 영화의 본질로 규정한다. 재미란 웃음이나 속도만을 뜻하지 않으며, 관객의 감정이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본질, 관계, 변화, 생존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본질의 장에서는 왜 여전히 영화를 만드는지, 무엇이 좋은 영화를 결정하는지를 되묻는다. 관계의 장에서는 영화가 협업의 예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현장에서의 리액션이 곧 연출의 윤리라고 말한다.

변화의 장에서는 오티티 확장과 인공지능의 등장, 팬데믹 이후 달라진 관객의 관람 방식이 한국 영화에 던진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류승완 감독은 극장의 약화를 단순한 몰락으로 보지 않고, 영화가 다시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로 바라본다. 그는 영화의 미래가 기술보다 경험의 밀도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생존의 장에서는 흥행과 평가, 계약과 시스템 속에서 창작자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강한 사람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사람이 강하다는 그의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다. 그는 끝까지 버티는 감각, 자기 방식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결국 창작자를 살린다고 말한다.

『재미의 조건』은 영화인을 위한 책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창작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드는가를 먼저 묻는 이 책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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