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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견딘 유배의 시간”, 『허균의 맛』 (김풍기, 글항아리)

『도문대작』을 통해 읽는 조선 미식과 욕망의 기록

장세환2026년 2월 2일 오후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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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맛.jpg출판사 제공

귀양지의 하루는 길고 허기는 깊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허기를 음식의 기억으로 버텼다. 『허균의 맛』은 조선의 문장가 허균이 유배지에서 남긴 『도문대작』을 출발점으로, 음식이 개인의 삶과 시대의 감정을 어떻게 품는지를 따라간다.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상실과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억의 장치로 등장한다.

허균에게 『도문대작』은 단순한 음식 목록이 아니었다. 풍요로웠던 시절의 맛을 떠올리며 현실의 결핍을 견디는 기록이자, 삶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김풍기는 이 텍스트의 행간을 읽으며, 음식에 스민 욕망과 슬픔, 그리고 시대의 균열을 드러낸다. 비극적인 가족사와 정치적 좌절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허균의 시선은 음식으로 향한다.

책은 허균 개인의 미각을 넘어 조선 사회 전반으로 시야를 넓힌다. 사슴고기와 숭어, 원추리 나물 같은 식재료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당시의 유통 구조와 권력, 사치와 절제의 기준을 비춘다. 어떤 음식이 값비싸게 이동되었고, 어떤 음식이 욕망의 과잉을 상징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미식이 곧 사회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김풍기의 서술은 학문적 해설에 머물지 않는다. 허균의 글을 번역하고 풀어내는 과정에 저자 자신의 음식 기억을 겹쳐 놓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각의 다리를 놓는다. 덕분에 조선의 음식은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문화로 읽힌다.

『허균의 맛』은 미식서를 가장한 역사서이자, 한 인간이 시대를 견뎌낸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음식 한 그릇에 담긴 기억이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지, 그 오래된 질문이 오늘의 독자에게도 조용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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