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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통제하면 현재가 굳는다, 『역사를 지우다』(제이슨 스탠리, 책과함께)

교과서와 박물관, 검열과 개정의 ‘기억 전쟁’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추적한다

장세환2026년 1월 20일 오전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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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지우다.jpg출판사 제공

권위주의 정권은 왜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두려워할까. 『역사를 지우다』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단지 해석의 다툼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선택 능력을 약화시키는 정치 기술이라는 점을 파고든다. 교과서 개정과 도서 검열, 박물관 서사 재편처럼 익숙한 장면들이 어떻게 ‘공적 기억’을 바꾸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드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역사를 지운다는 행위가 과거를 삭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미래의 가능성을 좁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역사 지우기’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국제적 패턴이라는 점을 사례로 설득한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정치 흐름, 미국의 교육 논쟁, 인도와 러시아의 기억 정치 등을 짚으며, 권위주의가 교육과 기억의 제도를 먼저 장악하려는 이유를 해부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시민이 과거의 복잡성을 잃는 순간, 누가 무엇을 빼앗겼고 무엇이 쟁취됐는지 판단할 근거가 흐려진다. 그 빈자리를 ‘순수한 건국 신화’나 ‘국가가 원하는 단일한 이야기’가 채우면, 정치적 선택은 더 쉬워지는 대신 더 취약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 지우기’의 전략은 삭제, 왜곡, 대체로 요약된다. 불편한 사실은 교과서에서 빠지고, 불리한 맥락은 다른 의미로 비틀리며, 기존의 서사는 더 그럴듯한 신화로 대체된다. 특히 교육 현장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여러 관점이 공존하는 역사 대신 한 줄로 정리된 정답이 들어설수록, 학생들은 질문하는 법보다 암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박물관과 기념 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전시의 배열과 설명문 몇 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어떤 집단이 ‘국민’이고 누가 주변부로 밀려나는지 감각적으로 각인될 수 있다.

이 책의 강점은 권위주의를 특정 국가의 특수한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는 데 있다. 권력은 늘 ‘기억의 질서’를 손보고 싶어 한다는 전제에서,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되묻는다. 결론은 비장한 선언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고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서로 다른 경험과 상처를 가진 시민들이 그래도 같은 현실 위에서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공통의 현실을 만드는 토대가 바로 과거에 대한 복잡한 이해이고, 그 이해가 무너지면 권력은 더 손쉽게 독점으로 기울 수 있다.

『역사를 지우다』는 결국 ‘역사를 되찾는 일’이 학자나 교사의 몫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억을 둘러싼 싸움은 곧 시민성의 싸움이고, 공적 기억을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실천이 된다. 불편한 과거를 덮는 순간 편해지는 건 당장 권력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나라의 사례로 반복해서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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