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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상처를 ‘인정’으로 놓아주는 연습, 『트라우마를 넘어선 가족치료 이야기』 (마린 세레네, 박도경 옮김, 국학자료원)
조상과 부모, 관계의 얽힘을 풀어 현재를 되찾는 가족세우기 안내서
출판사 제공
트라우마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를 잠식하는 마음의 구조로 남는다. 『트라우마를 넘어선 가족치료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과거를 바꾸려는 후회나 누군가를 붙잡고 이어가는 비난이 오늘의 삶을 갉아먹는다면, 필요한 건 분석의 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내주는 일’이라고 책은 말한다. 치유는 과거를 지우는 기술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로 두고 현재로 돌아오는 선택이라는 선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저자 마린 세레네는 가족세우기 작업을 바탕으로, 개인의 고통이 종종 개인 내부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는다. 가족 체계 안에서 누군가의 상실, 배제, 침묵이 다음 세대의 불안과 반복 패턴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얽힘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해 있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상담의 초점을 과거의 원인 규명보다, 지금 삶을 막는 반복의 고리를 알아차리고 관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쪽으로 옮긴다.
구성은 가족의 기원과 체계 이해에서 시작해 소속감, 질서, 얽힘 같은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장으로 이어진다. 특히 “부모를 반드시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은 도덕적 압박 속에서 관계를 견디던 독자에게 낯설지만 중요한 숨구멍이 된다. 사랑을 강요하기보다, 경계를 세우고 주고받기의 균형을 회복하며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각 장마다 실습과 연습 파트가 배치돼 있어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행동과 태도를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돕는다.
번역을 맡은 박도경은 상담 현장에서의 경험과 가족세우기 수련 과정을 바탕으로, 개념과 실습을 한국 독자가 따라가기 쉬운 호흡으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가족치료의 이론서라기보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 위한 안내서에 가깝다. 과거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대신, 있었던 일을 인정하고 내 삶을 다시 선택하는 사람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길잡이가 되어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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