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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냉소가 함께 켜진 등불, 『하트 램프』(바누 무슈타크, 열림원)
남인도 여성들의 일상을 12편의 단편으로 길어 올린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단편집
출판사 제공
『하트 램프』는 남인도의 가부장적 이슬람 문화권을 배경으로, 가족과 지역 사회의 규칙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는 여성들의 얼굴을 가까이 붙잡는 단편집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인터내셔널 부커상에서 단편집으로는 최초 수상작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다만 이 성취가 책의 가치를 전부 설명하진 못한다. 문장 속 인물들은 거창한 선언 대신, 밥 짓고 아이를 돌보고 말 한마디를 삼키는 하루로 자기 삶을 증명한다.
작가는 극적인 반전보다 일상에 깃든 미세한 균열을 따라간다. 할머니와 엄마, 딸로 이어지는 관계가 특히 선명하다. 사랑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세대의 손을 타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는 조용히 저항을 배운다. 연민 어린 시선과 어두운 유머가 맞부딪히며, 웃음이 새어 나온 자리에서 오히려 마음이 더 아려온다.
풍부한 구어체가 만들어내는 생생함도 장점이다. 말투와 숨결이 살아 있는 대화는 인물들을 종이 위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작품 곳곳에 반복되는 물건과 관습, 시선의 질서는 여성을 둘러싼 세계의 구조를 보여 주고, 그 구조 안에서 켜지는 작은 불빛 같은 결심이 독자의 기억에 남는다. 제목의 등불은 누군가를 비추는 장식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손에 쥐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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