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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뒤편의 고립을 정면으로,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이경란, 강)
중장년 남성의 몰락을 통해 한국 사회의 그늘을 비추는 소설집
출판사 제공
웃음으로 소비되던 인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온다. 이경란의 소설집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는 이 낯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소년이 자라 도착한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은 낡은 권위와 자본의 잔해, 그리고 말 못 할 고립이다. 작가는 개인의 비극을 시대의 자화상으로 확장하며,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의 방치 구역을 드러낸다.
표제작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는 아버지의 유산과 맞서는 한 남자의 내면을 따라간다. 낡은 단독주택을 손보며 아버지가 남긴 책들을 찢어 벽에 바르는 장면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저항과 굴복의 감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게 스며드는 관계의 잔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책은 흔히 케이 아재로 뭉뚱그려지던 중장년 남성들을 단순한 희화화가 아닌, 사회적 조건 속에서 균열 난 개인으로 그린다. 명함이 사라진 뒤의 시간, 관계의 언어가 막힌 뒤의 밤,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굳어버린 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들면서, 웃음 뒤에 남는 쓸쓸함을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밥 한번 먹어요」는 늦은 마음이 품는 착각과 현실의 뒷맛을 탐문하고, 「삐이유우우웅」과 「케이 아재의 가자미근」은 돌봄 노동의 무게를 남성의 몸에 얹어 보인다. 「소파인간 외출하다」에서는 통제의 규칙 속에서 손을 내밀고 견뎌야 하는 노동을 통해, 개인이 어떻게 시대의 장치에 붙들리는지 보여준다. 인물들은 거창한 비극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작은 굴욕이 쌓여 인생의 형태를 바꾸는 과정을 차분히 증명한다.
「무슈 파비용의 굴욕」과 「최소한의 나」는 자본의 논리가 사람을 어떻게 값으로 환산하고, 무엇을 쓰레기로 밀어내는지 우화와 묵시록의 결로 펼쳐 보인다. 소설집 전체가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소년들이 자라 도착하는 곳이 왜 이렇게 춥고 어두운가, 그리고 그곳을 지나온 우리가 무엇을 외면해왔는가.
추천사 한 줄이 이 책의 독서 경험을 압축한다. “도대체 케이 아재는 무슨 죄란 말인가?” 인물들을 향한 분노와 연민이 번갈아 솟구치고, 어느 순간 그 감정이 독자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이 소설집은 그 불편한 자리를 피하지 않게 만든다.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는 누군가를 조롱하는 대신, 우리가 함께 만든 그늘을 직시하게 하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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