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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미끼로 건 전쟁의 공기, 『색, 계』 (장아이링, 민음사)
욕망과 경계가 맞부딪치는 장아이링 단편 5편을 한 권에
출판사 제공
전쟁은 총성만으로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윤리와 욕망이 뒤엉키는 순간, 시대의 폭력이 가장 조용히 스민다. 민음사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의 단편선 『색, 계』를 선보였다. 표제작은 리안 감독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여인의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장아이링은 거대한 구호보다 “남자 여자 사이의 작은 것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작은 것’이야말로 전시의 봉쇄, 계급의 벽, 가족의 굴레 같은 시대 조건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번 단편선은 그런 장아이링의 미학을 한 권에 모았다. 사랑을 가장하는 유혹, 결혼의 틈, 가난과 체면의 충돌이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며 한 시대의 숨결을 만든다.
표제작 「색, 계」는 항일 운동에 뛰어든 대학생 왕지아즈가 친일 관료 ‘이 선생’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미인계라는 작전은 사람의 마음을 도구로 삼고, 그 도구가 어느 순간 사람을 삼킨다. 보석상에서 반지가 손가락에 걸리는 찰나, 임무는 더 또렷해져야 하는데 감정은 더 빠르게 흐른다. 책은 그 순간을 과장 없이 붙잡아 “실패했다는 예감이 서늘하게 밀려왔다” 같은 문장으로 인물의 떨림을 남긴다.
함께 실린 「봉쇄」는 전시 통행 제한으로 멈춰 선 전차 안에서 두 남녀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봉쇄’가 풀리면 마음도 풀릴까. 장아이링은 짧은 시간의 달콤함이 얼마나 손쉽게 오해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감정이 사실은 공포와 무료함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남는다.
「붉은 장미 흰 장미」는 욕망의 선택이 삶을 얼마나 오래 갉아먹는지 묻는다. 자유분방한 ‘붉은 장미’를 저버리고 ‘흰 장미’의 안정 속으로 들어간 남자에게 남는 것은 평온이 아니라 균열이다. 「정처 없는 발길」은 떠도는 삶의 감각을, 「증오의 굴레」는 가난과 혈연이 사랑을 어떻게 붙들어 매는지를 촘촘히 쌓아 올린다. 다섯 편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전쟁의 시대에 사람은 무엇을 사랑으로 착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색, 계』는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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