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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대신 기준을 세워 소비를 다시 배우는 법,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 블랙피쉬)
기후 위기의 출발점인 장바구니를 개인에서 세계까지 연결하다
출판사 제공
폭염과 산불, 미세 먼지와 한파가 번갈아 덮치는 날들이 일상이 됐다. 기후 위기가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처럼 보일수록, 개인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생활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매일의 소비가 에너지와 자원, 노동과 생태를 어떻게 흔드는지 결국 내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피하기 어렵다. 『착한 소비는 없다』는 그 불편한 현실을 “착한 소비는 없다”라는 선언으로 먼저 열어젖히고, 그다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문제는 소비를 둘러싼 언어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데 있다. 친환경이라는 말은 넘쳐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모호하고, 한편에서는 개인의 죄책감만 키우는 조언이 쏟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익숙한 편리로 돌아간다. 이때 필요한 건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오늘 당장 지킬 수 있는 기준이다. 덜 사는 선택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무엇이 진짜 필요이고 무엇이 만들어진 필요인지 구분하는 감각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이 책은 그 기준을 일상의 장면에서 꺼내 보여 준다. 무분별한 소비가 어떻게 노동 착취와 자원 고갈, 생물 멸종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연결 고리가 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지를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온라인 쇼핑과 새벽 배송의 편리 뒤에 감춰진 고된 노동, 건조기와 같은 생활 기기가 기후의 변동성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고기 소비와 여행 방식이 어떤 배출을 만들어 내는지, 익숙한 풍경을 하나씩 흔들어 보이며 질문을 붙인다. 읽다 보면 “내가 산 건 물건뿐일까”라는 문장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생활의 질문으로 바뀐다.
해결책의 자리에서 책이 내세우는 핵심은 ‘착한 소비’라는 환상을 버리고 ‘똑똑한 선택’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1부는 개인의 선택을, 2부는 동네와 직장 같은 사회 구조를, 3부는 세계의 흐름을 다루며 사고의 범위를 넓힌다. 장 제목을 질문형으로 구성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소비를 비난하는 대신, 장보기와 세탁, 일과 여행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과 루틴을 제안하며 실천의 문턱을 낮춘다. 덜 사고 오래 쓰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감각을,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건넨다.
또한 이번 책은 2020년 이후 환경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내용을 바탕으로 5년 만에 전면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현재의 변화를 반영한다. 온라인 소비 문화의 확장, 기술 환경의 급변 같은 현실을 “편리”라는 말만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그 편리가 어디에서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묻는다. 개인을 탓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세계가 촘촘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 주며, 선택의 방향을 다시 잡게 한다.
이 책이 남기는 의미는 단호함과 현실감 사이의 균형이다. 착한 소비라는 답이 없다는 말은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허상에 기대지 말고 기준을 세우라는 주문에 가깝다. 완벽한 소비자가 되려는 부담 대신,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는 힘을 만들게 한다. 작은 수고로움이 작아 보일수록, 그 수고로움이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변화는 더 명확해진다.
착한 소비를 찾느라 지치는 대신, 내 삶이 흔들리지 않게 지킬 기준부터 세우는 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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