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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의 착륙 오차가 전염병이 되돌아온다, 『둠즈데이북(합본판)』 출간(코니 윌리스, 아작)

2054년 옥스퍼드와 14세기 중세를 겹쳐 놓은, 가장 잔혹하고 따뜻한 시간여행 소설

장세환2025년 12월 30일 오후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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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북.jpg출판사 제공

2054년, 과거로 내려가는 일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 학과의 일상 업무다. 옥스퍼드 역사학도 키브린은 14세기 중세로 혼자 들어가 현장을 기록하려 한다. 지도 교수 던워디는 위험도가 가장 높은 시대로, 게다가 어린 학생이 단독 투입되는 계획을 끝까지 말리지만, 키브린은 연구자의 고집과 호기심으로 문을 연다.

문제는 ‘도착’에서 시작된다. 강하를 맡은 기술자가 쓰러지며 남기는 말,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촘촘한 미래에서조차 실수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그 실수의 대가는 사람의 몸에서 먼저 폭발한다. 키브린은 중세에 도착하자마자 원인 모를 고열로 무너지고, 그녀가 기대했던 ‘관찰’은 생존과 간호, 숨을 나누는 선택으로 바뀐다.

이 소설의 힘은 시간여행의 낭만을 한 번도 믿게 하지 않는 데 있다. 미래의 옥스퍼드에서도 전염병이 번지고, 중세의 마을에서도 병이 번진다. 둘은 기술과 위생의 차이로 갈라지지만, 사람을 잃는 방식은 비슷한 리듬으로 반복된다. 던워디는 학교와 도시를 뛰어다니며 사라진 학생의 좌표를 붙잡으려 하고, 키브린은 낯선 시대의 언어와 관습 속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한 아이의 체온을 지키려 한다. 소설은 두 시대를 교차시키며, 같은 공포가 다른 복장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집요하게 쌓아 올린다.

키브린이 마주하는 중세는 박물관이 아니라 생활이다. 난방, 식사, 기도, 소문, 두려움이 한 덩어리로 얽혀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역사소설처럼 디테일을 쌓으면서도, 미스터리처럼 사고의 원인을 좇고, 재난소설처럼 공동체의 붕괴를 응시한다. 한 문장처럼 단정한 경고도 남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일은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아.” 사람을 무너뜨리는 일은 늘 예상 밖에서 온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잔인할 만큼 정확히 보여준다.

『둠즈데이북(합본판)』은 옥스퍼드 시간여행 연작의 첫 장편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함께 거머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2018년 분권본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이번 합본판은 긴 호흡을 한 권으로 이어 읽게 만든다. 이 책이 붙잡는 건 거대한 시간의 장관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 한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작은 편향이다. 그 편향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인간으로 남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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