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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마을에 다시 피어오른 커피 향 『탄광마을 사우나』 출간(이인애, 열림원)

사우나 바닥의 3천만 원과 말하는 비누 거품이 여는 뜨끈한 미스터리

장세환2025년 12월 26일 오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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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사우나.jpg출판사 제공

탄광의 쇠락과 함께 시간이 봉인된 가상의 마을 ‘설백’. 그 마을의 오래된 사우나에서, 어느 날 고소한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 제9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 작가 이인애의 신작 장편소설 『탄광마을 사우나』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민지’가 ‘사우나 바닥에 묻어 둔 3천만 원’의 행방을 쫓으며 마을의 비밀과 공동체의 상처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말하는 비누 거품’이라는 판타지적 장치가 더해지며, 지방소멸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위트와 온기로 끌어안는다.

이인애는 그동안 코로나 시대 자영업자의 애환, 경력 단절 여성과 성인 발달장애인의 현실 등을 현실의 아이러니 속에서 날카롭게 포착해 왔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그 시선이 ‘지역’과 ‘공동체’로 옮겨 간 작품이다. 늙은 건물과 노인만 남은 설백은 더 이상 성장 서사가 작동하지 않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그 정지된 풍경을 ‘사라져 가는 곳’이 아니라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은 곳’으로 바꿔 놓는다.

사건의 실마리는 엄마의 유품으로 남은 다이어리 한 줄이다. “사우나 바닥에 묻어 놓은 3천만 원을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민지는 그 문장을 유언처럼 붙든 채, 고향에 잠시 머물며 돈의 행방을 좇기로 한다. 지도 앱을 확대해도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사우나는 한 곳뿐이라는 설정은, 개인의 상실이 마을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는 길을 단숨에 열어젖힌다. ‘돈’이라는 현실적 미끼가 ‘죽음’과 ‘기억’이라는 더 깊은 층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무거워질 수 있는 흐름을 바꾸는 건 공간의 변신이다. 폐광 이후 오랫동안 닫혀 있던 사우나가 카페로 리모델링되며, 사우나는 씻어 내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불러오는 장소로 바뀐다. 민지는 생계를 위해 목욕탕 청소를 돕고, 그 첫날 남탕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비누 거품’과 마주한다. 텅 빈 허공을 날아다니는 거품은 섬뜩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그래서 더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들’을 증명한다. 말이 되지 않는 존재가 말을 걸어올 때, 마을이 숨겨 온 말들도 결국 떠오른다.

소설은 ‘설백’의 인물들을 통해 공동체가 남기는 상흔과 회복의 가능성을 함께 그린다.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조용한 따돌림을 견디는 청소년, 폐쇄된 사우나에서 처음으로 손길의 온도를 배운 인물, 그리고 사우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겉은 재를 뒤집어쓴 듯해도 속은 촉촉하다”는 티라미수 케이크에 헌사와 위로를 담는 청년 사장 정훈까지. 이들이 오가는 동선은 곧 마을이 회복을 연습하는 방식이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통계로만 남지 않도록, 소설은 사람의 얼굴과 냄새, 습기와 빵의 질감으로 그 현실을 다시 쓰게 한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마을의 시간에 다시 불을 붙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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