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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없이는 닿을 수 없는 가족, 리 랑그바드 『나의 통역사』 출간

입양, 퀴어, 가족과 언어의 문제를 공백과 대화의 형식으로 탐색한 수상작이다.

언론출판독서TV2026년 6월 17일 오후 4:53
7
나의 통역사
📖 도서 정보

나의 통역사

저자
리 랑그바드, Maja Lee Langvad
출판사
푸른숲
발행일
2026-06-16
ISBN
9791172541316
정가
16,200원
도서 상세 보기

통역 없이는 닿을 수 없는 가족, 리 랑그바드 『나의 통역사』 출간출판사 제공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가족이 있다. 푸른숲이 출간하는 리 랑그바드의 『나의 통역사』는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된 한 여성이 원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며 시작되는 작품이다. 덴마크 몬타나 문학상과 프리즈마 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입양, 퀴어, 가족, 사랑, 언어의 문제를 대화와 공백의 형식으로 밀도 있게 그린다.

이야기의 조건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그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덴마크어를 하지 못한다. 이들은 한국에 함께 온 통역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통역 없이는 소통할 수 없는 가족, 가족은 아니지만 모든 말을 중간에서 건네는 통역사. 이 어긋난 관계의 구조가 작품 전체를 이끈다.

수년간 만남이 이어지며 그와 가족, 통역사 사이의 정은 깊어진다. 그러나 그는 문득 통역사와의 관계를 가족에게 밝히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과거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분리되어야 했던 사람, 언니들의 남편과 조카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비밀인 사람, 그리고 자신이 레즈비언이며 통역사와 동성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 작품은 이 관계가 어떻게 ‘말해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목차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시간과 장소로 구성된다. ‘서울의 어느 삼계탕집에서’, ‘부모님 댁 근처의 벤치에서’,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출구에서’, ‘큰언니 집에서’ 같은 장 제목은 거대한 사건보다 대화가 오가는 장소를 앞세운다. 삼계탕집과 피자헛, 호텔방과 칼국숫집은 가족 재회의 무대이자 말하지 못한 감정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이 작품은 대사와 지문, 공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물 간 대화를 직접 구현한다. 공백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말이 옮겨지는 시간, 번역되지 못한 감정, 끝내 가족에게 닿지 못한 문장의 자리다. 통역이 있어야만 가능한 만남은 동시에 통역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간극을 드러낸다.

리 랑그바드는 국가 간 입양과 인종차별,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이어 온 작가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에 거주하며 생물학적 가족과 재회했고, 입양인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했다. 『나의 통역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말과 침묵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가 혈연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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