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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이후 다시 시동을 건 삶, 『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출간(강정훈, 밀리언북)

“끌리면 참지 말기를”…두 바퀴 위에서 다시 만난 자유와 민주주의의 풍경

한성욱2026년 5월 26일 오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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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jpg출판사 제공

위암으로 위장의 70%를 절제한 뒤, 몸은 겨우 직립보행을 버티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삶의 속도를 줄였을 시간에 한 중년 남성은 뜻밖에도 모터사이클을 선택했다. 밀리언북이 출간한 『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새로, 만난, 세계』는 병 이후 다시 삶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한 철학자의 인문학적 라이딩 기록이다.

책의 저자 강정훈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문화학을 연구한 철학박사다. 그는 이번 책에서 단순한 취미 생활이나 여행담을 넘어, 모터사이클이라는 탈것을 통해 인간과 사회, 역사와 자유를 다시 사유한다.

책은 위암 수술 이후 찾아온 삶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죽음의 문턱을 지나며 오히려 “심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평생 위험하고 무모하다고만 생각했던 ‘오토바이’였다. 그러나 그는 곧 ‘오토바이’ 대신 ‘모터사이클’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단어 하나에도 문화적 편견과 사회적 인식이 스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리 사이에 자리한 엔진이 두 바퀴를 호령하며 대지를 헤치는 사이 존재는 사물과의 경계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들고 만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책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속도를 자랑하기보다, 기계와 인간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감각을 이야기한다.

책은 면허 취득 과정과 라이딩 입문기부터 시작해 알프스와 뉴질랜드, 타이완, 백두산과 압록강을 달리는 여정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단순한 여행 에세이와는 결이 다르다. 저자는 길 위에서 자연만 바라보지 않는다. 도로와 도시, 국경과 역사 속에 남아 있는 근대의 흔적들을 읽어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도로 위의 연대’에 대한 사유다. 그는 자동차 우선주의와 이륜차 차별 문제를 비판하며, 도로는 원래 다양한 이동수단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랫폼 노동자 라이더들에게 건네는 작은 손인사조차 “민주주의의 감각”으로 읽어내는 대목은 이 책만의 독특한 시선이다.

저자는 “상호인사와 연대감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장에서 라이더 문화 속에 존재하는 자발적 배려와 연대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또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크로포트킨의 사상을 끌어와, 길 위의 공존이 단순한 교통예절이 아니라 사회적 윤리의 문제라고 말한다.

책 후반부는 더욱 인문학적으로 깊어진다. 부록처럼 실린 ‘4개의 라이딩 테마 제안’에서는 동학, 의병, 독립, 민주주의의 현장을 직접 달려보는 ‘역사 라이딩’을 제안한다. 단순히 풍경 좋은 길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사의 상처와 기억이 남은 장소들을 몸으로 통과해보자는 시도다.

예컨대 ‘민주의 길’에서는 국가폭력의 현장을, ‘독립의 길’에서는 항일운동의 흔적을 따라간다. 모터사이클이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사유의 장치로 변하는 순간이다.

추천사 역시 인상적이다. 서평가 김미옥은 저자를 “길 위의 철학자”라고 부르며 “모터사이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기술과 윤리의 균형을 사유한다”고 평했다. 광복회 경기도지부장 김호동은 “굳은 생각을 말랑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백발라이더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결국 속도에 관한 책이 아니다. 죽음 가까이 다녀온 사람이 다시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이야기이자, 두 바퀴 위에서 자유와 공존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기록에 가깝다.

“끌리면 참지 말기를.” 에필로그의 이 문장은 단순한 라이딩 권유가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시 삶의 엔진을 켜 보라고 등을 두드리는 한 사람의 고백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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