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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시작된 관찰의 기쁨,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베른트 하인리히, 윌북)

90세 자연주의자의 40년 관찰기, 세밀한 시선이 일상과 생명의 연결을 드러내다

한성욱2026년 5월 4일 오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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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jpg출판사 제공

베른트 하인리히의 신작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는 제목 그대로 숲에서 출발한 사유와 관찰의 기록이다. 저자는 마흔에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메인주의 오두막으로 들어가 40여 년을 숲과 함께 살며, 작은 곤충에서 큰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이 책은 그 긴 시간의 축적을 한 권에 담은 관찰 일지이자 자연에 대한 에세이의 결정판이다.

하인리히의 글은 과학자의 정확성과 자연주의자의 애정이 결합된 드문 사례다. 그는 단순한 사실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 애벌레가 남긴 잎사귀의 흔적을 ‘암호’로 읽고, 모파네 나무와 코끼리의 공생을 통해 생태계의 역설을 포착하며, 큰까마귀의 행동에서 타자성의 미묘한 윤곽을 끌어낸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 개개인의 삶도 자연과 연관되어 있다”는 문장은 이 책의 관점을 압축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관찰의 방식이다. 하인리히는 현장에서 오래 머물며 작은 변화들을 놓치지 않는다. 밤에 나무 구멍을 들여다보거나, 땅에 누워 송장벌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그의 태도는 과학적 호기심이 어떻게 삶의 방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 결과 독자는 숲의 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호작용과 시간의 층위를 함께 체감하게 된다.

이 책은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사유하게 만든다. 저자는 한국 전통의 ‘풍경’처럼 건축이나 도시를 읽어내는 방식과는 달리, 숲 속 개체들의 삶을 통해 ‘공존’의 윤리를 제시한다. 생물학적 발견이 곧 삶의 통찰로 이어지는 지점들이 많아, 과학적 호기심이 곧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비평적으로 보면, 방대한 관찰 기록은 때로 세부 묘사에 치우쳐 전체 서사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그 느린 호흡 자체가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속도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하인리히의 느린 관찰은 오히려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숲을 ‘연구 대상’이자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는 시선을 비켜간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삶의 속도와 관계를 다시 묻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세밀한 관찰이 쌓여 만들어낸 통찰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 더 깊고 넓게 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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