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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도 위에서 시작된다, 『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이동민, 갈매나무)
500년 분쟁을 지리적 다중스케일로 해부한 동아시아의 구조적 읽기
출판사 제공
전쟁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는 이 전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한중일의 갈등을 민족 감정이나 정치적 사건으로 환원하지 않고, ‘지도 위의 조건’—입지, 자원, 교역, 기후—로 해석하는 데서 이 책의 관점은 출발한다.
저자 이동민은 임진왜란을 단순한 침략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에스파냐발 은의 유입과 해상 무역 네트워크 확장이라는 세계사적 변화가 동아시아 질서를 흔들며 발생한 구조적 충돌이었다. 이 지점에서 한중일은 이미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접점’으로 들어선다.
책의 핵심 개념은 ‘지리적 다중스케일’이다. 하나의 사건을 국가 단위로만 보지 않고, 지역·대륙·글로벌 차원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로 읽는다. 예컨대 러일전쟁은 단순한 양국 충돌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얽힌 다층적 힘의 균형 속에서 전개된 사건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접근은 19세기 이후 더욱 분명해진다. 아편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무역 불균형과 자원 흐름의 문제였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입지의 차이’가 근대화의 속도를 어떻게 갈라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한반도는 이 과정에서 언제나 대륙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요충지로 기능한다.
20세기로 들어서면 이 구조는 더욱 확대된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는 ‘내전의 공간’이자 동시에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확장된다. 이 모든 사건은 단절된 역사적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연쇄적 작용의 결과로 읽힌다.
책의 후반부는 현재를 향한다. 냉전 해체 이후 한중일은 경제적으로 긴밀한 공동체를 형성했지만, 동시에 자원·기술·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복잡해졌다. 저자는 이를 ‘전쟁의 형태가 바뀐 상태’로 본다. 총성이 멈춘 자리에 경제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이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한중일은 반복해서 충돌하는가. 그리고 그 충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답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지도 위에 그려진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의 형태만 달라질 뿐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 구조를 읽어내는 눈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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