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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너머, 생존자의 목소리로 기록한 진실, 『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은행나무)

‘엡스타인 파일’이 흔든 세계 권력의 이면을 당사자의 시점으로 증언하다

장세환2026년 2월 25일 오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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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스 걸.jpg출판사 제공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은 한동안 세계 권력층의 이름을 나열하는 스캔들로 소비됐다. 언론은 누가 연루되었는지, 어떤 권력자가 용의선상에 올랐는지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리지 않았다. 『노바디스 걸』은 그 공백을 메우는 기록이다.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을 고발한 생존자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자신의 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서술한 회고록이다.

책은 엡스타인 사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겪은 친족 성폭력과 방임, 보호받지 못한 성장 과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소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성착취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복된 학대와 버림, 왜곡된 관계 경험이 어떻게 한 소녀를 취약한 상태로 몰아넣는지 구체적으로 짚는다.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바로 그 취약성을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구성은 4부 체계다. ‘딸’에서 ‘죄수’, ‘생존자’, ‘전사’로 이어지며 한 개인의 변화 과정을 따라간다. 엡스타인의 저택에서 겪은 성착취와 통제, 이후 탈출과 트라우마, 그리고 공개 고발과 법정 투쟁이 촘촘히 기록된다. 특히 합의금 논란과 비난에 대해 “상처 입은 삶은 실재하며, 치유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반박하는 대목은 피해자에게 씌워진 낙인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회고록은 가해자의 범죄를 폭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침묵을 깨는 일이 왜 위험했고,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했는지를 증언한다. 미투 운동 이전인 2011년부터 공개 발언을 이어간 저자의 선택은 이후 이어진 연대의 물결과 맞닿는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과 젠더, 정의의 문제를 다시 묻게 한다.

『노바디스 걸』은 피해자를 ‘완벽한 희생양’이나 ‘영웅’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겪은 고통과 망설임, 두려움과 결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스캔들의 주변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 서야 할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을 다시 읽게 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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