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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장소 앞에서 멈춰 서는 시선”, 『완월동, 말하지 않은 것들의 기록』 (박이찬, 닷북)
철거된 공간을 응시하며 기억과 윤리를 묻는 사진 기록
출판사 제공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 지어지고 허물어진다. 그러나 어떤 장소는 사라지는 순간에도 오래 남는다. 부산 완월동은 그런 이름이다.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회의 그늘에 놓여 있던 이 공간은 철거와 함께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기억과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완월동, 말하지 않은 것들의 기록』은 그 사라짐의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한 사진 작업이다.
이 책은 완월동의 철거 전후 풍경을 담고 있지만, 단순한 도시 기록이나 현장 보고에 머물지 않는다. 사진가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비어 있는 유리방과 낡은 간판, 벗겨진 벽과 닫힌 문을 따라간다. 말하지 않는 사물과 공간을 통해, 그곳을 지나간 삶의 기척과 침묵의 무게를 감각하게 한다. 시선은 설명을 앞세우지 않고, 오래 머무는 방식으로 장소와 거리를 유지한다.
책의 구성은 완월동이라는 이름이 지닌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서 출발해, 사진이라는 매체가 기록과 증언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주거와 성매매, 일상과 비일상이 겹쳐진 경계의 풍경은 제도와 시선이 만들어낸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여백을 남긴다. 사진은 보이는 것을 말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응시의 태도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극적인 서사를 배제한 채, 거리두기와 존중을 유지하며 셔터를 누른다. 그 선택은 장소를 대상화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판단이자, 침묵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지 속 고요함은 독자로 하여금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완월동, 말하지 않은 것들의 기록』은 사라진 장소를 애도하는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철거 이후에도 남아 있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시선이며, 그 시선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끝내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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